[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사설) 소셜을 성찰한다

chrpcrew ch.)RADIO PEOPLE2015.03.14 01:41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괴리감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과 현실의 조우가 마딱드리는 순간이다.

꿈꾸고 바라는 그림은 분명하다. 언제나 대중의 워너비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현실앞에 비춰진 자아의 괴리감을 통한 좌절과 분노의 반복은 다시금 가면을 찾게되고..

왜곡된 이면을 애써 비판하며 회피한다. 악순환은 이어진다.





#. INTRO

많은 이들이 SNS를 사용한다. 컴퓨터에서, 휴대폰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용하고 써먹는다.

미디어의 빅뱅은 라이프 사이클의 순환마저 송두리째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측면은 원시적으로 행해지던 분야였지만,

단지 미디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변화되었을 뿐, 인간 본연의 행위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상이 누가 되든, 누구나 만남을 가지고 언어를 주고 받으며 관계와 소통을 나눈다. 삶의 기본이고, 생의 수단이다.

산업화의 최정점일지도 모르는 지금, 문명은 오프라인의 행위를 온라인으로 확장시켜 행위의 풍족함을 더해주었다.


사견이지만, 필자에게 있어 SNS는 '독'에 가까운 증오와 수단의 결과물로 각인한 때가 있었다.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과 표출하고자 하는 공명심이 가득했지만, 결과적으로 허울뿐인 껍데기에 불과할 때가 적지 않았다.

내면의 인격은 서서히 위축되어갔고, 그럴 수록 욕망이 반비례했다. 구태여 공허한 일상을 포장하고 그걸 보며 현실을 자위했다.

그러나 일련의 시간들이 흐르고, 근간을 뽑아 새로이 씨앗을 뿌리는데 있어 시작된 자아비판과 자아구조의 공조체계로써

SNS를 만지고자 하는 용기를 서서히 만들어보았다. 고심은 길었고, 초조함의 눈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시작한 필자의 SNS는, '날'것 그대로를 표출하고자 하되, 근원 또한 표출의 욕망에 근거함을 인정하게 된 셈이다.




(감정의 형태는 여러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표출되는 창구는 오늘날 동일시되가고 있다.)





#.2

SNS를 이용하다 보면 이런 분들이 계신다. '선팔하고 갑니다. 맞팔해요'

필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다.

안면도 없는 사람과 공통된 관심사나 주제도 없으면서,

통계치된 나의 팔로잉과 팔로우, 친구의 숫자놀이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어이없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그들과 진득한 관계를 맻는 경우는 결과적으로 1/1000도 채 안되었으며, 이마저도 실효성은 부족했다.

직설적으로, 필자는 SNS를 통한 관계적 표출과 대중적 노출을 갈망하며 숫자놀음을 할 생각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는 단지

온라인에서 내가 연결된 하나의 숫자라 느낄뿐이라는 점이다.


높은 연결성으로 인한 커리어와 이를 통한 셀럽의 지위가 주는 쾌감이 무엇인지는 공감하겠으나,

구태연한 관계성으로 인한 실효없는 인연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 아닐 뿐더러,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맹목적인 관계 지향성과 그로 인한 대중적 인지도 상승효과가 내게 있어 무엇이 도움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으며,

결과적으로 관계의 1차원적인 목적인 '소통과 교감'을 추구하고 싶은 것이지, 셀러브리티 마인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일전 어느 매거진에서 나온 관련 글 중에서 SNS로 인해 실제 생활속 대인관계가 무뎌지는 현상의 원인으로 몇가지를 내놓았는데,

그중 한가지로 '우울하고 힘든 상황만을 표출한다'라는 점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의 견해와는 다른데,

SNS를 통한 대인 표출과, 실제 삶 속에서의 대인 표출에는 관계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말 친한 사람이라면 실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짜증나도 마주보고 저마다의 상황으로 언질을 줄 것이며,

적어도 필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친구 관계를 재검토해보라 권하고 싶다.

정말로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경우의 사정을 제외하고선, 피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매체상으로는 다르며, 이 대목은 매거진의 의견과 동일하기도 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며, 이를 지속하길 원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힘들었던 것을 

온라인 상에서까지 연결해서 하소연을 듣고자 하진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위로도 정도껏이지,

정도가 지나치면 독이 될 뿐. 승자없는 싸움에 계속 발담구고 있을 의의가 없다.


만약 당신의 친한 친구가 계속해서 힘들고 이를 계속 받아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는 사람이기에 위로를 해주거나, 인내가 폭발하여 상호간의 언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다양한 소모가 발생하게 되겠지만,

매체적 관계는 더욱 단순하게도 대상과의 연결 관계를 버튼 한번 눌러 끊으면 되니, 정리마저 손쉽다.

게다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다툼, 언쟁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많은 이용자들은 오늘도 SNS를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사람의 평판이라는 전통적 오프라인 방식이 온라인으로 확장되어 갈 만큼,

시대의 발전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구조에 있어 다양한 범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관계형성에 주를 이루고, 이를 통한 가치 상승에 주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과의 교류및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구축해가는 과정은 대다수의 인생에서 절대적 고민이다.)




#.3

원점에서 보자.

이제 SNS는 문명을 풍족하게 해주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도구가 되었음이 자명하다.


이를 풀어서 살펴보면, 관계를 맻는 관점이 조금 더 쉬워졌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먼저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희망하여 접촉하는 것을 1차적으로 비춰볼때,

접촉에 성공한 이후 두 인간의 관계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당 시간이 할해된다.

상대에 관한 성격, 특징, 취향등의 관점을 알아내야 하고, 이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관계의 성립은 서로가 수락되어져야 하며, 일치되는 결과점이 확인되어야 함으로써 관계는 성립되어진다.

끝이 아니다. 관계가 성립되어지고 이것이 유지되어야 하는 과정들이 필요로 해진다.

결과적으로 시작점부터 일정 수준 도달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험치들이 쌓여가야 한다. 


SNS는 이러한 관계의 관점을 조금 더 단순화 시키고 보편화 시키는 점에서 파급력이 더해진다.


타인과의 접촉이 FACE TO FACE가 아닌 자신의 매체 (컴퓨터, 스마트폰등)를 통해 이루어지고,

이미 상대에 대한 정보도 일정부분 제공이 되고 있기에 (사용자의 포스팅=사진,글,링크,영상등) 이것을 보는 이용자는,

관계를 수립할 대상에 대한 도출과정이 생략된 대신, 상대에 관한 사전 평가가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접근성에 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절약하게 되며, 관계의 성립 결정에 있어서도 비교적 수월해진다.

사용자는 자신의 SNS를 통한 일상의 희노애락을 저마다의 채널에 노출하고, 많은 이들은 이를 확인하며,

때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 접촉을 통한 과정을 매체로 손쉽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문명에게는 더할 나휘없는 혜택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 본질적인 의미로 흘러가고 있을까? 애석하지만 필자의 생각엔 거기까진 아닌듯 싶다.


미국 해버퍼드칼리지 사회심리학 연구진은 SNS에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게시물을 과하게 올릴수록 사람들의 실제 호감도

떨어지며, 인간관계가 좁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비단 이 외에도 다양한 결과를 통한 SNS의 문제점들은 제기되왔다.

여기서 필자가 바라본 점은 모두 자기자신에게 알맞게 포장한 가면을 쓰고 있단 점이며, 이로 인해 자아를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의 공간이라는 점을 들어 독립성을 말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누구나 볼 수도 있다는 곳인 오픈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SNS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면 반대로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측면이 존재하다는 것은 문명의 아이러니함이다.




(보이지 않은 진심을 오늘도 포스팅에 담고 관계를 형성해간다. 그러나 진실은 저 넘어에 있을 뿐..)




#. OUTRO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얼마전부터 다시금 SNS를 시작했다. 보여주기 위한 요식에 불과한 측면도 일정부분 기인하며,

내면의 욕망을 인정함과 동시에 더욱 감추려 드는 자아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측면이 해당된다.

상당히 거추장스럽겠지만 이게 팩트이다. 현실의 내모습을 굳이 숨기려 들 필요가 있을까?

물론 대중들의 조롱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부터 조롱과 핀잔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야 하겠지만,

꿈보다 해몽이 더 큰 척도를 그려 그곳에 현실을 낑겨넣는 행위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지금 내가 바로 나다.

온라인의 연결된 숫자놀이로 치우쳐진 틀이 아닌, 한 인간으로써.



그렇기에 앞으로도 이러한 감정의 저울질은 어느 한켠으로 끊임없이 맴돌며 스스로를 저울질할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중심축을 조절해나가는 것과, 가면놀이에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잡아가는 것이 인생 전체에서 중할 것임은 분명하다.


끝으로 사견에 대한 고뇌의 사유는 지난 뉴스 한가지를 정리하면서 마쳐보려 한다.




2014년 6월. 페이스북에서는 흥미롭지만 상당히 깨림직한 실험 결과물이 들어나서 큰 파문이 일었다. (해당논문내용 - 영문)

페이스북 코어데이터과학팀이 지난 2012년 1월 11일 부터 18일까지 사용자 약 70만명을 대상으로한 데이터를 수집한 논문이

그 발단이었는데, 실험이 진행된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먼저 페이스북에서 대규모 피실험자군을 형성(이용자)하여 뉴스피드를 통한

  긍정적 OR 부정적 게시물을 인위조작하여 반응을 살핀다.


-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게시물을 많이 본 이용자는 긍정적인 게시물이나 댓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부정적인 게시물에 노출 혹은 많이 본 이용자는 부정적인 반응의 피드백 (재방문율 감소)이 많았다.


- 재방문율의 감소는 곧 매출 하락 (이용자 데이터 기반 광고 = 타킷광고)의 원인이 된다. 이로 인한 부분을 대책수립한다.



일명 '감정실험'으로 불리워진 이번 실험은 1차원적으로 판단해보았을때는,

단순히 내부적인 검토 차원에서 그저 그들만의 전략 수립목적으로 '조용히' 처리했더라면? 바램대로 조용히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냥 단순하고 (좋게 말해서다) 쉽게 보자면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러나 이것이 외부로 들어난 것이 그들에게는 치명적 실수였겠지만, 이보다도 더욱 위험한 사실은

이로 인해 수십만의 사용자들이(크게는 13억 가입자 전체) 단순 실험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는 것.

이것은 도덕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문제 (인간의 감정 행위에 대한 모독)로 직결되는 점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최고책임운영자 (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이번 실험은 페이스북이 다양한 제품을 실험하는 일상적인 업무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해명을 제대로 못해 유감스럽다



이어 10월 2일. 뉴스룸을 통해 최고기술책임자 (CTO)인 마이크쉐로퍼는 아래와 같이 밝혔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 강화된 검토 과정을 거칠 것이며 특히 개인적인 주제인 경우에는 더욱 신경쓸 것이, 수석 연구원들과 엔지니어, 변호사와 회사 개인정보보호 정책팀으로 구성원을 모아 검토 과정을 거칠 것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한 결과를 정리해보면,


"미리 말 못하고 진행해서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계속 진행할 것이다.

 물론 눈치는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더욱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말이다."




단면적이지만, 우리는 SNS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들과 성취하고자 하는 인생의 척도들.

보여지고자 하는 욕망. 이 모든 것들 또한 조종당하게 되는 운명에 처해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명의 풍요로움이 과연 언제까지 스스로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지,

자아 만족을 위한 오늘의 포스팅 하나가 어디까지 나를 위안시킬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묻고 싶다.









(덧붙이며) 페이스북은 지난 2014년 12월 24일. 동영상 섹션 강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을 실시하였다. (테크크런치 보도)

         기능개선을 위한 판올림으로 끝날 이번 실험이 단순 유용한 기능 강화와 매출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강구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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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사설) 경쟁과 평가의 정당성에 관하여

chrpcrew ch.)RADIO PEOPLE2015.02.26 18:51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 대한민국에서 공존하는 모든 사람들 (상위 몇%정도는 논외로 치자)은 경쟁과 평가에 둘러쌓여있다.
 학창시절에는 대학이라는 경쟁과 평가,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과 환경에 대한 평가
 중,노년에 이르러서는 사회적 위치에 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평가에 관대한 일상이다.
 그런데 묻고싶다. 경쟁과 평가라는 것이 과연 정당하기만 한 것인가?





79%
이 수치는 대한민국 고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를 의미한다. (*1)
쉽게 설명해서 100명중 79명은 대학에 간다는 소리다.
비교대상이 애매한 구석이 있겠지만, 고등학교 진학률 조차 70%를 미치지 못하는 인도(*2)와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거센지는 쉽게 짐작 가능할 것이다.

질문하나 던져본다.
과연 이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취업을 하는 것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입사하는 %는 얼마나 될까?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찾지 못했으나 어렵지 않게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50%도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근거없는 근거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래의 점수로 대신한다.



60.3점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의 삶 만족도를 환산한 수치다. 참고로 1위인 국가는 94.2점이며, 네덜란드이다. (*3)
33.9점의 차이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한것은 적은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의 주인공들인 아이들의 삶이 이런 수준이라면, 이런 수준을 밟고 올라온 현재의 우리들의 미래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는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운건 당연한 처사일지 모른다.

2015년 1월 무렵,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예비 소집일날 모인 부모와 아이들이 줄을 서는 일이 있었다.
사는 곳을 기준으로 해당하는 부모와 아이가 서있던 사진이었는데, 논란이 거셌다.
단순하게 바라보기엔 부정하고 싶을 만큼 신분제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는 아파트와 주소로 인해 내가 남과 비교가 되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과
그것이 무기인양 위세를 떨치는 일부 시민들의 문제가 뒤섞인 코메디가 혀끝을 내두르게 한다.
굳이 줄을 세웠어야 하는건지? 줄을 세워야 하는 것이었다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놓친것이 문제지만,
이런 세심함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시대가 오늘날 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비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가정세태를 조사하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성적으로 인한 대학 진학상담에 이르기까지,
1차적으로 필자가 맞이했던 경쟁들과 평가의 지점이었다.
끝이였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이는 곳 시작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경쟁과 평가는 이어졌다.


남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아버리는 평가자들과 경쟁자로 부축임 당한 동료들.
살기위해, 비교당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남을 밟고 올라서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현실.
비정상적인 틀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당치 못한 것들을 인정하는 모순. 끝없는 죄악의 반복.
울타리 안에서의 ‘갑’과 ‘을’의 위치는 명확해졌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죄없이 염탐해갔다.

상황이 반복될수록 필자는 어렸을 적, 도덕시간에 배워왔던 협동심이라는 대목을 의심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들은 과연 옳은 일인가?’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다.
옳았다면 다른 생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무시했다거나,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를 들어올리진 않았기에.




1/2

주제를 조금 빗겨가보자. 옆나라 일본에서는 연애와 결혼의 가치관이 매우 바뀌어 가는 분위기다.
비슷한 세대의 연애와 결혼이 전혀 다른 현실로 변화되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첫 성 경험율이 50%라는 비율을 조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평균 남자는 30, 여자는 29세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는 길가에 우연히 지나가는 2명의 30살 남자 혹은 29살 여자 중 한명은 경험이 없단 소리다.
성 경험이 저렇다고 연애가 저러기까지 하겠냐는 것에 반문할 자신은 없다.그 이상일 수도 있을거다.
그러나 평균 결혼 연령의 차이가 남녀 13살 정도라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리 높지도 않을 것이 주관적 견해이다.

연애의 문제에서도 경쟁과 평가, 비교는 계속 이어진다.
궁핍해진 경제상황 속에서 연애조차도 이젠 행복한 선택 따위가 아니라 필수 생존전략이 되어버렸다.
감정조차 돈으로 환산해가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이자 굴레로 전락했다.
정작 중요한건 이게 옆나라 이야기라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곧 그리 될 것이라는 전망이기에
불편한 진실에 관한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방이후, 우리가 전후로 먹고살만한 수준까지 이르는데 까지 약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세대 수준의 시간으로 우리나라 전체가 부강해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점이고,
국가차원에서 자랑할만한 점이겠지만,
극복과 발전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온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모순들의 병폐를 직시하고 있는 중이다.


‘넌 취업 언제할래?’
‘넌 언애 언제할래?'
‘넌 결혼 언제할래?’
‘넌 아이 언제키울래?’


익숙할만한 경쟁과 평가는 도처에서 여전히 이어진다.
꿈이라는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인생이 값질 이유는 충분하다.
저 질문들이 인생을 대변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작금의 현실이 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일정부분의 경쟁과 평가는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모든 죄악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모든것에서, 심지어 개인들의 영혼까지도 비교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 것은 무언가의 부조리다.
뜯어 고치는 것이 불가능 할지는 몰라도 생각한번 다르게 해보자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일까?




20년전에 발표된 노래 가사 한줄에서 의미하는 것이 오늘까지 통용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젋은날을 헤메일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 - 교실이데아








*1 : 2010년 발표 기준
*2 : 인도의 대학진학률은 평균 25% 수준이라고 한다.
*3 : 2014년 OECD 회원국 기준, 대한민국은 회원국 중 최하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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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문화유랑단

(old data) 090807 Michael Jackson Tribute Party @ volume

chrpcrew ch.)RADIO PEOPLE2015.01.29 21:00





Written By RP Crew



: 본 내용은 예전 공식 카페를 통해 공개된 자료입니다. 백업 차원도 있구요, 보존 차원에서 블로그로 이전했습니다.

  떡밥이 오래되었으니 감안하시고 읽으시면 된다네요~ 물론 상하진 않았으니 걱정마시길~!! ㅎ




 

@ Forever 'King Of Pop'

 

그가 떠난지도 2개월이 다 되간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사실. "King Of Pop"
이제는 정말로 전설이 된 마이클 잭슨이 우리곁을 떠나간 이후에도 전세계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소규모부터 대규모에
이르는

여러 추모 행사가 개최되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이에 동참하여 함께 즐기는 동시에 생전의 그가 보여준 화려하고 멋진 모습들과

오랜 기억에 남을 유수한 명곡들을 한결같이 회자하고 있다.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VJVRywgmYM

(* 마이클잭슨의 대표적인 추모 플레쉬 몹으로 알려진 영상. Bounce Team(스웨덴) 작품이라 알려져 있다.)

 

허나 유독 국내에서만큼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이러한 열기가 없다고 할 만큼 조용한 것이 사실이다.
왜?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우리나라의 추모 열기는 상당히 저조함을 떠나 부실함 그 자체였다.
마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같기도 한 동시에 아예 남의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하는 이런 모습들은 한명의 리스너 입장에서

아니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누구나 인정하는 전세계적인 아티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가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었단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패션은 전세계를 아우른 문화 아이콘이었다.
동시에 직접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를 4번이나 왔다갔던 그이다. (콘서트 2회와 개인 자격 2회)
이렇게 그와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조용하다는 사실이 팬을 떠나서 매우 아쉽다.

 

MJ를 통해 우리나라의 음악 시장을 돌이켜 보자면 날이 갈수록 매우 열악하고 협소한 상황이다.

아마 누구나 공감은 하고 있을 것이다. 음반을 위한 시장이 아닌 음원을 위한 시장.

물론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현 시스템적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1곡을 위해 아낌없이 600원을 투자하지만 1장의 앨범을 위해 12000원을 투자하진 않는다.

후크송이 대세를 이루고, 길어야 1개월을 넘기지 못하며, 트랜드만이 공존하는 변칙적인 현 구조에서 그의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를
다시 석권하고 그의 히트곡들이 아직까지도 빌보드 차트 10에 들어가있는 해외의 상황을 대입해보자면 참으로 허무함이 묻어 나온다.


 

 

@ 트리뷰트!! 분위기는 확실히 좋았다.

 


그러던 중 뒤늦게나마 국내의 한 클럽에서 그를 추모하는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라도 그를 위한 파티가 열린다는 사실이 오랜만에 나를 들뜨게 했다.
복잡한 상황을 잠시 제쳐두고라도 이번 파티는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했다.

 

트리뷰트 파티라는 컨셉이다 보니 MJ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해서 그날의 컨셉이었던 MJ 패션으로 참석했다.

무더운 이 여름날에 무려 정장!! 정장이라니.. (정장이라뉘!!)
그래도 MJ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Dangerous의 패션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것은 나로써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실, Billie Jean 코스츔을 하고 싶었기도 했지만 도저히 빤짝히 상의와 장갑을 구할수가 없었다. 큭~)

 

이날의 파티는 나를 포함하여 3인 (민 , 한박사)이 동행한 파티였다. (함께 해주셔서 쌩유베리캄솨~)
중간에 이런 저런 경유로 삽질(?)을 잠시 한 이후에 10 : 40분경 파티 장소인 Volume에 도착했다.
사실 몇차례 갈 기회는 있었지만 머뜩치 않은 경우도 있었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기에 이번기회를 통해 Volume을 확실히 느껴보고

싶다라는 부분도 충족되는 점은 개인적으로 1석 2조의 혜택이었다.

 

입장을 위해 입구에 들어서면서 까지는 별다른 분위기는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 조용하다 못해 썰렁했다.
그러나 내부에는 트리뷰트 파티라는 말에 걸맞게 MJ의 이미지가 그려진 모형들이 4군데에 걸쳐 걸려 있었고, 화장실 가는 방향쪽

벽면에는 그를 추모하는 코너를 만들어 헌화와 함께 메모지에 남기고자 하는 말을 적어 넣는 코너도
마련되어 트리뷰드의 느낌이 잘 살아난다고 보여졌다.

 

11시 부터 1시까지의 음악 플레이는 일반적으로 Volume에서 플레이 하는 음악들로 채워졌다.
클 럽에서 파티를 진행할 때 본격적인 메인 플레이가 대략 새벽 1시 ~ 2시 사이에 이루어 지는 것을 상기해보면 아직은 시간적으로 꽤나 남은 시점이었기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파티를 즐겼다. 중간중간 display를 통해 생전 그의 모습이 재생되기도 하여 트리뷰트 파티의 기대감은 높아지기 충분했다.


 

 

@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고..

 


본격적인 플레이가 시작된 새벽 1시부터 트리뷰드 쇼라는 개념으로 마이클 잭슨의 대표적인 퍼포먼스가 무대에서 공연됐다.
Billie Jean과 Beat it, 그리고 Dangerous가 각 팀에 의해 차례대로 플레이 되었고, 일행들과 함께 지켜보며 퍼포먼스를 관람했다.
오리지널의 분위기라기 보다는 클럽의 분위기에 맞춰 약간 변형된 사운드(mix)에 춤이 더해진 모습으로
총 3가지의 퍼포먼스는

약 10분간 진행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고, 중간중간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플레이 되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건 아니다 싶은 기분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아니다라는 강한 느낌.

그렇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 파티는 트리뷰드 파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마이클 잭슨을 위한 파티라기 보다는 보통의 파티에 마이클잭슨을 커버로 삼은 정도의 개념이었다.
플레이 되는 모든 곡들은 마이클 잭슨과 하등의 관계가 없거나 설령 히트곡이 나오더라도 변형된 플레이었다.
오리지널이 아닌 변형에 의한 플레이. 다시말해 그냥 수많은 loop중 하나에 불과한 사운드였다.

 

사실 트리뷰트라 하면 말 그대로 해당 대상에 대한 감사, 존경, 애정을 표시하는 의미이다.
음악계에서는 존경하는 뮤지션을 위해 후배 뮤지션들이 헌정하는 방식의 앨범이 제작되는데 이를 트리뷰트 앨범이라 한다.
트리뷰트 앨범에서 연주 하는 뮤지션들은 본래의 사운드 적절하게 변형하고 재해석해서 부르는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트리뷰트 앨범의 주인공은 엄연히 해당 대상이 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
2ne1, bigbang, Kara, 2PM 같은 그룹들이 공연의 주제를 마이클잭슨 헌정 합동 공연을 한다 해놓고 정작 본 행사에서는 스타
일만

대강 내어 그냥 자기 노래들을 쭉 부르다 중간에 30초 정도 자기들 노래에 잭슨 노래를 믹스해서 틀어준다고 치자.


이게 과연 트리뷰트 인가?

 

국내에서 진행된 트리뷰트 파티나 컨셉 행사를 본인이 안 가본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날과 같은 황당함과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제대로 플레이 하겠지라는 기대감으
로 참고

기다려봤지만 결과적으로는 더는 안되겠다 싶어 중간에 나와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이날의 파티는 결국 컨셉만 차용 (이도 완전한 의미는 아니다.)하여 진행된 파티일 뿐이었다.

 


@ 애석한 현실..

 

한 명의 리스너이자 클러버의 기준에서 이날의 파티를 화두삼아 다시금 되돌아 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클럽 파티라는 개념은 아직까지 국내에 잡힌 계기가 손에 꼽힐정도로 기억된다. 물론 지금 이시간에도 멋지고 기발한 파티를 기획하고 제작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정작 컨셉에 부합되는 의미에서의 파티는 마땅치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여건성 파티 기획의 근본과 기본적인 사항들이 모두 흥행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은 공감한다.

그러나 확실한 컨텐츠 제공을 통해 무엇이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기억하고 즐겨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파티의 목적과 대상이 누구나 익히 알고 대중적인 대상의 주제라는 점에서 더더욱이 그렇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고인을 기리고 그에 대해 추모를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파티에서 본 점은 본질적인 면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고자 했던 의미가 퇴색되어짐은 물론,

이로 인해 잭슨을 기억하고자 참석한 사람들이 허무해지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이날의 파티는 더욱 애석해 지는 것이다.

 

너무 무거워 지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내모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적정한 선과 이를 확실히 언급할 수 있는 근본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해외에서의 MJ 트리뷰트 파티는 대게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XQy_Rh5XN0

https://www.youtube.com/watch?v=4NvP00ASM1w

 

(누가 봐도 이게 리얼 아니냐고~ 아놔 !!)

 

 

ps] 마이클 잭슨의 복귀 콘서트로 알려진 'This Is It' 마지막 리허설 장면과 지인들의 인터뷰 등으로 제작되는 동명의 영화가 

      전세계 최초로 국내에 개봉된다고 하네요. 개봉일은 10월 29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ps2]오는 8월 29일날 마이클 잭슨 생일을 기념해서 국내에서도 추모 flashmob (컨셉은 맨위의 동영상)이 진행된다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가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관련 사이트는 http://blog.naver.com/hiharachi/120087975357)

 

 

ps3]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당신은 영원한 King Of Pop입니다.

 

 

 

* 본 저작물에 대한 권안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 무단 복제 및 배포, 수정, 2차 작업등을 엄금하며, 사전에 허가 없이 사용을 금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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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칼럼) 연애를 포기하는 사람들의 심리

chrpcrew ch.)RADIO PEOPLE2015.01.29 09:00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관계의 지속성이라는 것은 늘쌍어렵다.

이는 알게 모르게 인간 본연의 배타적 관계의 포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연애에서 더욱 이런점은 두각된다. 요즘같은 현실에선 더더욱이 그렇다.

그래도 마냥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자. 안그래도 세상은 복잡하다.




연애라는 것이 두렵고, 마냥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탄스럽다. 인간 본성의 감정과 공유마저 박탈당해야 하는 이런 빌어버릴 시대에 말이다.

그래서 필자같은 인간도 별일없이 살고 있고 이런 생각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공유해보고 싶었다.

블로그를 개편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온 사설이다. 부족한 것은 애초부터 많은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필자를 포함한 이글을 보는 모두가

조금이나마 느끼고 위안을 받았으면 싶은 마음에 글을 써내려간다.




#.1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사람이다.

함께하면 설레이고 행복하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행복하고 아름답다.


어느덧 시간이 지났다.

설레임의 하루는 일주일이되고, 즐거움의 일주일은 한달이 되고,조금씩 적응된 한달은 어느새 석달이 되고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애석하게도 발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개낀마냥 보이는 것만 보이고 행복에 쌓여있던 자신의 시아는 이제 맑은 날씨의 시아를 확보한다.

이제부터 본질을 보는 시간이 되어간다. 그저 평가의 단계로 치우쳐질수도 있겠다.


내 옆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사람에 대해 궁금해진다.

그리고 본질을 하나 둘씩 보게된다. 약간은 괴리감도 생기고, 약간은 실망감도 생긴다.

도피 혹은 탈출하고 싶던 행복한 일상은 다시금 어둑한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현실감에 사로잡히는 이로썬 이제 자신에 대한 이해관계와 득,실을 따지기 시작한다.

그결과, 관계의 지속을 추구할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따져보기 시작한다.

(좋게 포장했지만 직설적으로 '이제 발빼야 하는건가?' 혹은 '그럼에도 좀 더 두고볼텐가?'로 나뉘겠지만)





<영원할 것 같던 설레임도 종국에는 현실의 모순과 자아비판으로 이어진다.>





보통 여성들의 심리적 관점에서 이런 행위가 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남성들이라고 해서 안심할 필욘 없다. 똑같다. 따지는 건 매한가지다.

이유야 단순하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베타적인 상황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상황을 들추고 싶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다.

소휘 밥그릇 빼앗기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전쟁통속에 내몰린 수 많은 이성들은

만남의 시작점에서 위안을 삼게 되지만, 이는 오래갈 수단으로써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몸매'로 판가름난다 하던가?

능력있는 남자라면 높게 보고 싶은 욕망이 우선시될테고, 그래서 따지게 될 것이다.

외모와 몸매가 갖추어진 여자라면 나를 리드할만한 (=맡길만한) 사람을 따지게 될 것이다.

초면에는 그런것들이 많은 필요성을 갖추지 않더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름에 있어서는 보편 대게들 그렇다. 그게 본연의 모습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디에선가 나의 현실에 비교해서 이런 모습들에 괴리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의 한없이 부족한 상황을 통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이런 말 적어재끼는 필자라고 해서 다를건 없다. 필자도 능력 없다. 만들기는 바쁘지만 실상 없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진실된 만남과 솔직한 생각들이 시작점에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2

인간 본연의 특성이 변하는 것은 어렵다.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이상, 쉽사리 바뀌는 것은 어렵다.

예로부터 남성은 사회생활을 통해 밖으로 자신의 바운더리를 책임지고 먹여 살리는 역활을 주도했다면,

여성은 남성의 보호아래 안으로부터 책임을 지고 한 가정의 후대를 준비한다.

시대가 변해서 어느정도 달라진 규정은 따르지만 대게 이런 풍토로 지속되어 온 것이 남녀라는 인간이 만나서

일구는 가정의 자화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따지려 들고 싶고, 판단하려 들고 싶은 욕망의 근원일거다.


필자는 시대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 - 왜냐면 정의는 제각각이기에) 남성상에 못미칠 수도 있다.

자기비판이라 봐도 좋고, 자격미달이라 폄해도 좋다. 모두 일리있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고자 하는 욕망은 공존한다. 나아가지 않는 인간은 결국 도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에 대해 많은 것을 따지지 않는다. 얼굴이나 외모, 그냥 맘에 들고 좋은 감정이 들면 본다.

별달리 따지고 싶지도 않다. 애초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핏줄은 애석하게도 정해져 있다. 인정해라.


결과적으로 이성에 대해 따지는 것이야 오랜 후에 따져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는 관점이다. 

결혼같은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관점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연애다. 아직 시작단계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이성에 대한 콩깍지는 대게 2달안에 풀린다고 어디에서 그러더라.

괜찮은 사람인데 성격이 모나거나, 어딘가 특이하게 하자가 있다거나,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만나면서 부터 시간이 흐르고 콩깍지가 벗겨진 상태에서 능력만 따지진 말았음 좋겠다.

안그래도 나오면 모두가 삭막하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 충분히 안다.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안다.



능력과 외모, 몸매를 보기 앞서 사람을 보자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구조는 태초부터 달랐다. 이해시키려 들지마라. 그냥 다름을 인정하라>





미래를 위해 내일을 저당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20대들이 특히 그렇다고 매체에선 그리 떠들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은 매 한가지일테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흘러가면 훗날 해도 소용없다'는 것이 있단 점이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결국 포기하고 내치는 행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사유는 간단하다. '당장 힘드니깐' '지금은 아닌거 같아'라면서 자기 위안속에 자신을 바라보는 그사람을 버리는 행위.


만나서 통보도 아닌 (만나면 양반이라기도 하지) 문자 한마디로 날리는 18번 대사인

'미안해, 상처 받지 않았음 좋겠어' 라는 위안 따위는 '아프니깐 청춘이다'와 같은 맥락일 뿐이다.

(물론 저 책 내용은 좋다. 제목이 현실면에서 인용된 과정이 좀 거시기해서 그렇지.)


반문해보자. 상처라는 것을 받지 않았음 좋겠다고 던져놓고 상처를 주는 행위는 무슨 관점으로 설명할텐가?

결국 찌르던, 긁던, 베던간에 상처준건 준거다. 그 속에서도 자신은 착한 사람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선한사람 컴플랙스'가 발동하여 방어를 취하는데,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한가지만 알려주겠다.



결국 아픈건 아픈거고, 상처준건 준거다. 착하게 기억될리 만무하다.

만약 이말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명심해라. 당신은 당신만을 보고 사랑하고 좋아한 상대방에게

시간+금전+감정적으로 모두 능욕준거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고 질떨어지는 인간이 되었을 뿐이다.



#.3

삶이 힘들다고 해서, 현실이 녹록치 않다해서 당신이 선택한 사랑마저 쉽게 내버리는 행위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한 사람에게 이 무슨 무례인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명목하예 사랑하는 마음을 유린하는건

대체 어떤 심보이고 어떤 모순이란 말인가? 그럴바에 툭까놓고 싫다 그러고 나쁘게 인식되라. 어짜피 당신 나쁜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지만,

착각하지 마라. 재벌가로 태어난 사람들도 고민과 걱정은 늘 달고산다.

당신만이 특별하게 힘들고 아프다는 자기 방어를 취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 5000만 인구중에 행복을 논할 사람이 과연 몇%로 규정할 수 있을까?

시대를 봐라. 모두가 힘들다. 연말정산으로 삥뜯기고, 각종 세금으로 삥뜯기는 걸로 모자라서,

공공연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다양한 모순들이 당신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이건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통 사항이다.


만약 삶이 힘겨워서 정리할 필요가 있고 자기 자신의 컨트롤 자체가 어려워진 현실에서

정리가 필요하거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방법은 한가지다.



당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청하라.



무슨 도움이냐? 싶을거다. 어짜피 말해봐야 똑같은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똑같다. 다를건 없고 별 도움 못받을 수 있다.

여기에 '말한다고 처도, 그냥 옆에 있으라는 듯한 투로 계속 나를 설득하려 들면 어쩌냐?'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또한 맞다. 남자,여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 상황은 상당히 위급한 상황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이러나? 내가 싫어진건가?'라는 고민이 수반되어질 것이다.


일방적인 관계의 종지부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이 생겨 그럴수도 있겠고, 그저 상대가 질려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럴때는 필자 또한 별 수 없다. 마음이 멀어진 원인을 근거로 정리한 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경우에서는 회복은 힘들것이고, 상대가 질려서라면 회복이 더딜 것임은 자명한다.


본질로 회귀해서 '나의 그사람이 현실적인 것으로 인해 너무 힘들어한다'는 전제하에 말한다.

이 역시도 생각과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믿고 기다려보는게 맞다. (남은건 의지의 문제다.)

당신이 그만큼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만사 제쳐두고 상대 그 자체를 이해하고 믿어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포기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만드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바로 위로다.

당신을 이해하고 가장 많이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이 홀로 살아가는데는 참으로 외로운 존제라는 것.

위로보다 더 값진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힘겨워 하는 현실에 있어서, 혹은 관계적인 면에서 다소 떨어져 보이는 상황에 있어서

혼자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말길 바란다. 숨겨봐야 좋은건 없다. 결과는 말해봐야 뻔한것이니.



비온뒤 땅이 더 굳는것은 지극한 이치이다.

우리 모두는 갈대와 같다. 바람에 휩슬리기도 하며,

풍량에 거센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힘겹게 버티며,

설원의 차가운 상황속에서 꿋꿋히 버티어 간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을 맞이하며 보상받는다.





<힘들고 지칠때, 누군가 내옆을 지키고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것. 이 시대의 가장 큰 복이다.>





#.마치며

지금 당신옆에 있는 사람을 두고 현실의 한계를 직시한 당신.

힘든거 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지금 당신옆에 있는 그 사람이 당신에게 앞으로 얼마나 큰 위로가 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없어지면 알 것이다.


인간의 가장 모순중에 하나는, 때 늦은 후회다.

후회하기전에 먼저 할만큼은 해봐라. 그리고 결과를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힘빼지 말고 지금 보이는 현실만 보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결과는 언제든 뒤바뀔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기회는 충분하니깐.


당신만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

무엇이 더 걱정인가? 힘들면 위로 받아라. 남자든 여자든.

자존심에 얽매여 떳떳하게만 살지 마라. 힘든건 인간 모두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위로 받고 살자.


올해에는 많은 분들이 좋은 사람과 함께 행복한 해를 보내길 바란다.

그리고 힘겨울 때, 서로 보듬고 위로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니깐.





(추신)

1-쓰다보니 길어지기만 했다. 두서 없어도 너그러히 양해 구한다.

2-카운셀링 받고 싶은 분들은 아래 댓글 남겨주시라.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주변에서 종종 자문 구하는 실력이니

  원없이 해드리겠다. 우리 모두 위안받자고 사는 삶인데, 남겨주시면 감사히 달아드리겠다. (물론 쓰는데는 좀 늦을지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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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문화유랑단

(사설) NEXON의 NC 경영참여를 바라보며

chrpcrew ch.)RADIO PEOPLE2015.01.27 23:00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애초부터 우려했던 일이었다.

결국은 자본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넥슨의 엔씨소프트 경영참여 선언이 발표된 오늘. 업계의 충격은 상당히 거센 모양이다.

협력관계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초대형 기업으로써의 동반 성장을 목표로 추구하던 양사의 바램은

오늘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게 된 꼴이되었다.


일각에서는 '어짜피 벌어질 일'로 치부되었고,

다른 일각에서는 '이건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 라고 선을 그엇다,




<시작은 좋았을 수 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간 보이지 않는 싸움은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자본시장에서 주식을 발행하는 회사에 최대 주주가 '경영 참여'를 한다는 것과 '투자 목적'의 관계는 극명하다.

비록 최대주주라 할지라도 '투자 목적'의 경우는 경영상황과 의견에 대해 발언할 권리인 '의결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 참여'로 공시하는 순간 그 결과는 분명해진다.


보통의 최대주주가 '경영 참여'로 공시하게 되면, 기업 경영에서 필요하고 이에 대한 결정들을 할 수 있는 다수의 권한들이 따르게 된다.

간단하게는 기업 임원의 선임과 해임, 또는 직무 정지, 이사회 등 회사 기관과 관련된 의결 및 정관 변경,

회사 자본금 변경 및 회사의 합병 또는 분할 등에 관련한 최종 결정,

중요한 자산 전부 또는 일부 양수 또는 양도 등과 같은 회사 운영부터 회사 청산까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행여나 '이번 일이 뭐가 큰 대수냐?' 라고 치부한 분들이라면, 이를 통해 회사를 운영하는 주체가 누가 되는지 이해될거다.)

 

상도에 어긋난 일이 벌어졌하지만, 넥슨이 경영참여를 한다는 것에 대해 법적 장치나 제도적 틀에서 문제될 것은 없다.

발단으로 볼 수 있는 2013년 10월에 채결된 매입매도 과정과 목적을 볼 때에는 지금의 상황을 넥슨이 쉽게 핑계대기 어려운건 사실이다.

또한 넥슨 입장에서는 꾸준히 주식을 매입해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도의적인 문제가 있긴 했다.)


정리해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단순 핑계로 상도의를 지키는 회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이득이 우선인 냉혹한 자본주의 현실속에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허왕된 꿈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작은 기업들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대형 기업들의 경우라면, 쉽사리 유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물론 지주계열의 주식을 사들여 경영방어를 한다는 목적이라던지, 손실매꾸기나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간혹 보았지만..)


필자는 애초부터 이 거래의 결과가 훗날 두 회사의 보이지 않는 권력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한쪽에서는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라 말을 하고 있지만, 냉정히 판단해보자.

이건 상도에 앞서 기업간의 거래다. 어떤 업계와 특성을 포함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투자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만약, 투자 성격이 강했다면? 투자 형태의 목적만 달성하고 말았더라면? 과연 저정도까지 투자를 하려 들었을까??

시작의 본질은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훗날 이런 수순을 투자자 측에서는 고려했지 않았을까??



여기에 넥슨이 애초부터 기업의 규모가 키워져왔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지금 이상황이 그리 놀랄만한 상황도 아닐것이다. (물론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싸움에 대해 어떠한 회사에게도 기울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저, 결과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을 뿐이며, 이를 우려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시장에서 두회사의 입지는 사뭇 남다르기도 하겠지만,

이를 통해 다양한 모델로써 제품을 만들어내고 발전시켜온 업계 최강자들이

결과적으로 볼쌍사나운 꼴로 비추어지는 점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보면서 씁쓸해지고 유감스럽다.



이제,넥슨은 공식적으로 '경영 참여' 선언을 통해 엔씨소프트의 경영에 간섭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만든것이 정확할지도)

엔씨입장은 무방비라 볼 수 있겠으나, 이번 공시발표전 인사발령 통해 내부결속력을 강화 시키는 준비를 하긴했다.

또한 현재 기업결합 승인이 났지만, 상황이 달랐던 관계로 공정위의 직권 재심사가 발동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긴 하다.


30년 우정에 빛나던 두 회사의 오너는 이제 자본의 싸움통에서 살벌한 경영전쟁를 맞이할 시간이왔고,

깔끔하게 먼저 통수를 시전한 넥슨의 일격에, 한방 제대로 먹은 엔씨소프트의 상황.


이제 한방먹은 엔씨가 그대로 KO될지,

또는

어떻게든 막아내어 반격을 꾀할지,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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