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조종시간]/문화유랑단

가사의 미학 : 유실된 대중음악의 텍스트

chrpcrew ch.)RADIO PEOPLE2016.03.19 19:03




얼마전 지인과 함께 홍대를 다녀왔다오랜만에 나선 길이라 설레임이 상당했다. 무척 오랜만이라 더욱 그랬다. 행복감을 채워가며 향하던 지하철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하철을 내린 순간부터 나의 설레임은 정 반대로 변모했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제집 마냥 드나들 던 곳인데, 무언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아니 낯설었다. 타지 속에 방황하는 외지인의 심정이었다. 잠시일 것 같던 불편함은 역으로 증가되었다어느새 정말 와도 되나?’싶은 눈치를 보던 내 자신이 보였다. 이곳을 향해 이렇게까지 어설프고 애매한 감정이 들긴 처음이었다. 훌쩍 지나버린 시간만큼이나 아이러니 함은 점점 커져갔지만 풍경은 여전히 활발했고, 망설이고 있던 우리에겐, 그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 

억지로 입은 듯한 옷 마냥 불편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 가운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전부터 자주 가던 가계 한곳이 있는데, 꽤나 오랜시간 그 자리에서 유지하고 있는. 우리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충만한 감성과 세련된 멋을 부리기 적격인 동네 이지만, 이날 만큼은 소소한 기분을 내고 싶었다. 적어도 우리들은 그랬다.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여전히 북적이고 붐볐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따라들었다. 자리를 예약하고 대기를 하면서 시끄러울 만큼 가득 채우던 음악 소리에 심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연스레 주제는 음악으로 연결되고, 금새 다양한 생각들을 가득 메운 소리 속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지만 잊지 않았던 음악들이 주는 메시지는 묵묵히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여백을 제공해주던 텍스트를 사뭇 진지한 견해로 해석하고 풀어보기를 반복했다. 적어도 이 공간은 내게 있어 그런 곳이다. 찬찬히 음미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곳을 가득매울 음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감상과 감성이 공존하던 대화 들의 화제는 한 뉴스로 이어졌다. 비틀즈의 앨범 스트리밍 & 다운로드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개시된다는 소식이었다. 


우리에겐 무척 반가웠지만 전체적 시점으론 비교적 늦은 출발이었다.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음악을 이제 쉽고 간편하게 들을 수 있게 된 세상이 온것이다. 비틀즈가 오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던 언론들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비틀즈가 상륙한 국내 음악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왕왕 풀어내고 있었다. 의문이다. 과연 얼마나 달라질까? 적어도 그들을 들을 수 있다는 상황은 연출 되었으나 변화라는 상황까지 이어지긴 아마도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들을 환영하는 것은 낡고 오래된 가치가 아닌, 비틀즈라는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에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앨범을 소장 함에도 불구하고, 열광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던 소식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나오는 노래들의 가사에 대한 의미를 말이다. 요즘 흘러나오는 음악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노래들의 홍수에서 과연, 소리의 텍스트를 곱씹어 보며 내게 생각 해 볼 여지를 주던 음악이 얼마나 있던 지를 말이다. 작지만 소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공간 속에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충분한 이곳 보다도 더 크고 더 넓게 퍼지던 음악들 안에는 들어갈 수 없던 메시지가 쏟아지는 지금의 음악들에 대해. 생각의 결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숫자는 매우 적었고 희귀 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90년대 (넓게 잡아서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음악에서 가사의 구성을 보면 흐름은 변화했지만 나름의 서정성이 담겨져 있었던 곡들이 적지 않았다. 그 시대에서도 인스턴트적인 내용들이 없지 않았지만, 반대로 여지를 주는 텍스트도 적지 않았다. 괜히 90년대의 가요계를 두고 '우리나라 음악사에 있어 최고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던 시대'라는 흔한 수식이 붙었는가 싶겠냐만, 반대로 현 상황에 대해 단순히 상업적인 점으로 치부하긴 어렵겠다. 시대의 사이클이 바뀌고, 세대의 사고력이 변화했다는 것을 간과할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가 존제하든, 시대의 흐름은 꾸준 흘러가 있고, 주류의 세대들은 변화하며, 그 세대들이 가진 그들만의 화법과 언어로  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가사가 주는 메시지는 여러모로 소비 적으로 변화했다. 요약하자면,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공격적이다. 소재의 폭도 좁아졌고, 과도하다 싶을 만큼 자극적이다. 대부분의 소재가 그나물의   마냥 비슷하게 표출 되기 이른다. 장황한 설명 보다도 지금 이시간 올라있는 주류차트  50위안에 속하는 가사들을 읽어보면 이해가 빠를것이다. 

  

찾아보면 아직도 인디씬의 음악에서는 서정성을 느낄 만  곡들은 제법 있다. 지금도 발표되며, 어딘가에서 흘러 나오고 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음악들이 메인스트림. , 제도권과 메이저 상에서 듣기까지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접할 수 있지 않기에 수고를 해야 하며, 얼마나 수고를 했냐에 따라 결과를 얻을 수 있기에, 가깝고도 먼 느낌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일부에선 이런 면을 만족하는 리스너들도 없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상기 해보면 그리 반갑지 않은 이야기다. 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편식과 편중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석한 이야기다. 음악에 대해, 시대의 흐름과 마켓 환경이 휘발성 소비로 변화 했다 하지만적어도 텍스트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그런 의미를 깊고 오랫동안 생각하며 되 새   있는 음악이 메이저에서 듣기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은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따른다


간간히 다른 주제들도 더러 나오고는 있지만, 깊게 음미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전체적으로 쓰여진 대부분의 텍스트 속에서 짜릿한 감각은 언제나 충분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내 사라지고, 언제 들어오고 나간 건지도 모른채 흘러 가버린다. 듣고 나면 어느 언저리에서 맴돌던 지난 날의 음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대목이었다. 다소 낡고 촌스럽다 평하기 전, 지금의 메시지보다 더욱 깊고 아련하거나, 청량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도 많았던 내용을 절하 하기엔 이르지 않을까? 어쩌면 퇴색된 것은 지금이지 그때가 아니었다. 허무한 흐름에 처한 현실이 보였다. 깊이가 상실된 시대의 텍스트. 우린 여기서 얼마나 다양한 견해를 던져 볼 수 있을까? 모두의 사고는 더욱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고인 텍스트 안에 메시지들이 현 시대를 가득채운다. 비단 사고를 막아서는 것은 시대의 자화상과 소리의 텍스트만 있겠나 싶지만. 자성을 말하기엔, 경직되어 가는 시대가 도래 했고, 변화를 기대하는 것 또한 어려운 현실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즐거움을 뒤로하며 자리를 나섰다. 공간을 메워가던 소리들이 잠잠해지고, 돌아선 발걸음 뒤로 다시금 다양한 음악들이 지칠줄 모르는 화려한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방 곳곳에 다양한 소리들이 채워지고 있었지만, 나의 여지를 던져볼 만한 틈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작성, 수정 : 서가 (SEOGA)


초본 : 2016. 03. 01

최종 : 2016. 03. 05



  

 

@ 2016. 문화유랑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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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사설) 경쟁과 평가의 정당성에 관하여

chrpcrew ch.)RADIO PEOPLE2015.02.26 18:51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 대한민국에서 공존하는 모든 사람들 (상위 몇%정도는 논외로 치자)은 경쟁과 평가에 둘러쌓여있다.
 학창시절에는 대학이라는 경쟁과 평가,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과 환경에 대한 평가
 중,노년에 이르러서는 사회적 위치에 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평가에 관대한 일상이다.
 그런데 묻고싶다. 경쟁과 평가라는 것이 과연 정당하기만 한 것인가?





79%
이 수치는 대한민국 고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를 의미한다. (*1)
쉽게 설명해서 100명중 79명은 대학에 간다는 소리다.
비교대상이 애매한 구석이 있겠지만, 고등학교 진학률 조차 70%를 미치지 못하는 인도(*2)와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거센지는 쉽게 짐작 가능할 것이다.

질문하나 던져본다.
과연 이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취업을 하는 것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입사하는 %는 얼마나 될까?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찾지 못했으나 어렵지 않게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50%도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근거없는 근거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래의 점수로 대신한다.



60.3점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의 삶 만족도를 환산한 수치다. 참고로 1위인 국가는 94.2점이며, 네덜란드이다. (*3)
33.9점의 차이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한것은 적은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의 주인공들인 아이들의 삶이 이런 수준이라면, 이런 수준을 밟고 올라온 현재의 우리들의 미래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는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운건 당연한 처사일지 모른다.

2015년 1월 무렵,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예비 소집일날 모인 부모와 아이들이 줄을 서는 일이 있었다.
사는 곳을 기준으로 해당하는 부모와 아이가 서있던 사진이었는데, 논란이 거셌다.
단순하게 바라보기엔 부정하고 싶을 만큼 신분제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는 아파트와 주소로 인해 내가 남과 비교가 되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과
그것이 무기인양 위세를 떨치는 일부 시민들의 문제가 뒤섞인 코메디가 혀끝을 내두르게 한다.
굳이 줄을 세웠어야 하는건지? 줄을 세워야 하는 것이었다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놓친것이 문제지만,
이런 세심함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시대가 오늘날 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비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가정세태를 조사하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성적으로 인한 대학 진학상담에 이르기까지,
1차적으로 필자가 맞이했던 경쟁들과 평가의 지점이었다.
끝이였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이는 곳 시작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경쟁과 평가는 이어졌다.


남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아버리는 평가자들과 경쟁자로 부축임 당한 동료들.
살기위해, 비교당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남을 밟고 올라서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현실.
비정상적인 틀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당치 못한 것들을 인정하는 모순. 끝없는 죄악의 반복.
울타리 안에서의 ‘갑’과 ‘을’의 위치는 명확해졌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죄없이 염탐해갔다.

상황이 반복될수록 필자는 어렸을 적, 도덕시간에 배워왔던 협동심이라는 대목을 의심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들은 과연 옳은 일인가?’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다.
옳았다면 다른 생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무시했다거나,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를 들어올리진 않았기에.




1/2

주제를 조금 빗겨가보자. 옆나라 일본에서는 연애와 결혼의 가치관이 매우 바뀌어 가는 분위기다.
비슷한 세대의 연애와 결혼이 전혀 다른 현실로 변화되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첫 성 경험율이 50%라는 비율을 조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평균 남자는 30, 여자는 29세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는 길가에 우연히 지나가는 2명의 30살 남자 혹은 29살 여자 중 한명은 경험이 없단 소리다.
성 경험이 저렇다고 연애가 저러기까지 하겠냐는 것에 반문할 자신은 없다.그 이상일 수도 있을거다.
그러나 평균 결혼 연령의 차이가 남녀 13살 정도라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리 높지도 않을 것이 주관적 견해이다.

연애의 문제에서도 경쟁과 평가, 비교는 계속 이어진다.
궁핍해진 경제상황 속에서 연애조차도 이젠 행복한 선택 따위가 아니라 필수 생존전략이 되어버렸다.
감정조차 돈으로 환산해가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이자 굴레로 전락했다.
정작 중요한건 이게 옆나라 이야기라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곧 그리 될 것이라는 전망이기에
불편한 진실에 관한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방이후, 우리가 전후로 먹고살만한 수준까지 이르는데 까지 약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세대 수준의 시간으로 우리나라 전체가 부강해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점이고,
국가차원에서 자랑할만한 점이겠지만,
극복과 발전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온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모순들의 병폐를 직시하고 있는 중이다.


‘넌 취업 언제할래?’
‘넌 언애 언제할래?'
‘넌 결혼 언제할래?’
‘넌 아이 언제키울래?’


익숙할만한 경쟁과 평가는 도처에서 여전히 이어진다.
꿈이라는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인생이 값질 이유는 충분하다.
저 질문들이 인생을 대변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작금의 현실이 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일정부분의 경쟁과 평가는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모든 죄악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모든것에서, 심지어 개인들의 영혼까지도 비교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 것은 무언가의 부조리다.
뜯어 고치는 것이 불가능 할지는 몰라도 생각한번 다르게 해보자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일까?




20년전에 발표된 노래 가사 한줄에서 의미하는 것이 오늘까지 통용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젋은날을 헤메일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 - 교실이데아








*1 : 2010년 발표 기준
*2 : 인도의 대학진학률은 평균 25% 수준이라고 한다.
*3 : 2014년 OECD 회원국 기준, 대한민국은 회원국 중 최하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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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사설) 그래도, 느리게걷자

chrpcrew ch.)RADIO PEOPLE2015.01.06 22:45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 새해가 찾아왔지만 나는 반대로 느리고 싶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좋긴 하겠지만,

   그것이 모든것을 좌우할만큼의 능사일까? 과연 그러할까? 모르겠기에 끄적거린다.




오래된 생각이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할때부터 다가오는 알수없는 불안감이 적정하게 교차되는 애매한 감정.

우두커니 이 자판을 두드린다. 한글자씩 써내려간다. 의미를 담고, 생각을 정리하며 두드려간다.

좀처럼 멍한 기분을 지울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자판을 두드려간다. 조금은 두서가 없어지는것 같다.


언듯 만으로 4년정도 흘렀다. 이방송을 해온것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그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지칠때까지, 재미가 없어질때까지 무작정 떠들어보자!는것이 목표였다.

다행이도 그 목표는 현재진행형이고, 프로그램의 근간이자 뿌리가 되었다. 어느 프로그램을 하던지 말이다.

새로운 프로그램도 런칭을 마친 지난 겨울. 많은 생각들과 계획들을 정리하며, 곰곰히 되돌아보았다.


잘가고 있던 것인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뻔해보이는 질문에도 근본적인 고민은 충분히 담겨져있다.

비단 방송의 문제일 뿐이겠는가? 인생도, 일도, 사랑도 모두 담겨져있는 것일지도.

의미를 담고, 생각을 정리하며 두드려갈뿐. 우두커니 이 자판을 두드린다.




(출처는 구글링.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이쯤이면 홍수다. 아니, 범람이란 표현이 맞을까? TV를 제끼고서라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너무도 많아졌다.

지금 이 페이지만 보더라도 그렇지 아니한가? 이것도 매체이다.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결국 매체이다.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현실. 우리는 매체의 범람에 갖혀버렸다.

나도 어쩌면 이런 범람에 우를 끼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지랖이 넓다면 그럴것이다.


작년말부터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에는 그런 고민은 심화 단계를 접어들고 있다.

매체가 많아진다는 것은,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겠다는 이유에서 그렇겠지만, 반대를 놓고보면 홍보수단 강화일것이다.

그 홍보수단이 과연 질적으로 좋은 것인가? 쓸때없는 접근성만 늘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순간 양면성에 갖혀버렸다. 새해가 찾아온지 몇일이나 지났다고 나는 이런 잡다한 괴리감을 맛보고 있다.

귀차니즘의 도래일수도 있고, 게으리즘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멍한 기분은 여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토와 뿌리. 아무것도 남지않은 껍데기일뿐이더라도 우리들의 지탱할 수 있는 이유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대로 갈 것이다.

처음 다짐했던 목표는 여전하고, 그 이상으로 의욕이 앞서고 있다는 점이 증거일테니깐 말이다.

부족함을 따지려들거든 한도 끝도 없기에 꼬투리만 잡히는 것들 뿐일게다. 거울을 들여다 보자. 내가 보일뿐.

다양성이라는 고민의 시작은 여기까지 고민으로 담아 왔겠지만, 나는 그것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지속가능한 즐거움은 여기서 비롯될 것이라는 내 의견에는 아직까지 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가야 할 방법론만 남게된다. 고민은 여전히 줄기 어렵지만 말이다.


좋아요 59개, 구독수 200건이 채 안되는 영세 채널주가 내뱉는 한탄이긴 할테지만, 모두 좋다.

현실을 직시해야 미래를 예측해볼수 있다.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일뿐이다.

나는 걸어갈 것이다. 우리 제작진들과 함께 여전히 별일없이 느리게 걸어갈 것이다.

재미를 향한 여정은 지속되야 하고, 즐거움을 향한 공유는 끝이 없어야 할 것이다.

조금 모자르더라도,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것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

완벽하지 않은것이 애초부터 우리들의 목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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