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ON-air]/"전 하는말 씀"

(무늬만거대한!) 예.고.편!!~

chrpcrew ch.)RADIO PEOPLE2015.07.07 20:26





반갑습니다. 빨2입니다.

제목이 참 거창한데..


사실,

별 의미 없이 저렇게 적어봤습니다.

(뭐, 아시잖아요? 다들?? ㅋㅋㅋ)



각설하고, 저는 지금 일본에 있습니다.

오사카쪽이구요. 타국놀이문화탐구라는 지대한 특명을 지닌채로 지난주 출발하여 출국을 앞두고 있지요.


제가 뒷담화 피플레트로 피플 2가지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가지 모두 할 이야기들은 많더라구요.


그래서 준비중입니다.

오사카를 무대로 한 광활한 대서사시..를 보여드릴 깜냥이 부족하니,

이를테면 투어개념이랄까요?


귀국을 앞두고 보고개념의 리포트를 준비중에 있습니다.


일단 적어보긴 하는데.. 귀찮네요..ㅋ

아무튼 잘 정리해서 곧 선보이겠습니다~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고, 메르스와 낙타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전 무리안가는 선에서 좀 더 방사능과 친추맻고 가겠습니다.ㅎ





씨유 쑨~





150707

빨2 X COIN 올림







(즐거운 저녁 식사 맞이하시길 바라면서.. (자랑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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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ON-air]/"전 하는말 씀"

2014.04.16

chrpcrew ch.)RADIO PEOPLE2015.04.16 09:49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어느 한 배의 이야기>


어느 한 배가 바다에 침몰했습니다.

그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그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품은 마음들은 달라도, 저마다 포근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한 배가 바다에 침몰했습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말을 믿고, 저마다의 시간들을 보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은 변했습니다.

왜곡된 말은 끝이 없었고, 그 끝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바다속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그저 초조하고 착잡해져만 갔습니다. 

때론 울분도 차올랐습니다. 분노로 일갈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이 살아있을거란 믿음을 갖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어느 한 배가 바다에 침몰했습니다.

이것은 이념과 사상을 떠난 이야기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우리와 함께 숨쉬던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간 이야기 입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고도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다정스럽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권리가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2014년 4월 16일. 

기억하십니까? 


일년전 바로 오늘입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며,

아직도 고통속에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선가 우리와 함께 숨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와 다를것이 없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꿈이 있고,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할지라도

단, 하나만 기억해주십시요.



바로 오늘.

오늘을 기억해주십시요.



2014년 4월 16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채널 라디오피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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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ON-air]/"전 하는말 씀"

Comming Up! New Project!!

chrpcrew ch.)RADIO PEOPLE2015.03.15 03:19




2015년

라디오피플의 3번째 야심작!



기대하시라!!

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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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사설) 소셜을 성찰한다

chrpcrew ch.)RADIO PEOPLE2015.03.14 01:41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괴리감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과 현실의 조우가 마딱드리는 순간이다.

꿈꾸고 바라는 그림은 분명하다. 언제나 대중의 워너비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현실앞에 비춰진 자아의 괴리감을 통한 좌절과 분노의 반복은 다시금 가면을 찾게되고..

왜곡된 이면을 애써 비판하며 회피한다. 악순환은 이어진다.





#. INTRO

많은 이들이 SNS를 사용한다. 컴퓨터에서, 휴대폰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용하고 써먹는다.

미디어의 빅뱅은 라이프 사이클의 순환마저 송두리째 바꾸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측면은 원시적으로 행해지던 분야였지만,

단지 미디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변화되었을 뿐, 인간 본연의 행위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상이 누가 되든, 누구나 만남을 가지고 언어를 주고 받으며 관계와 소통을 나눈다. 삶의 기본이고, 생의 수단이다.

산업화의 최정점일지도 모르는 지금, 문명은 오프라인의 행위를 온라인으로 확장시켜 행위의 풍족함을 더해주었다.


사견이지만, 필자에게 있어 SNS는 '독'에 가까운 증오와 수단의 결과물로 각인한 때가 있었다.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과 표출하고자 하는 공명심이 가득했지만, 결과적으로 허울뿐인 껍데기에 불과할 때가 적지 않았다.

내면의 인격은 서서히 위축되어갔고, 그럴 수록 욕망이 반비례했다. 구태여 공허한 일상을 포장하고 그걸 보며 현실을 자위했다.

그러나 일련의 시간들이 흐르고, 근간을 뽑아 새로이 씨앗을 뿌리는데 있어 시작된 자아비판과 자아구조의 공조체계로써

SNS를 만지고자 하는 용기를 서서히 만들어보았다. 고심은 길었고, 초조함의 눈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시작한 필자의 SNS는, '날'것 그대로를 표출하고자 하되, 근원 또한 표출의 욕망에 근거함을 인정하게 된 셈이다.




(감정의 형태는 여러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표출되는 창구는 오늘날 동일시되가고 있다.)





#.2

SNS를 이용하다 보면 이런 분들이 계신다. '선팔하고 갑니다. 맞팔해요'

필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다.

안면도 없는 사람과 공통된 관심사나 주제도 없으면서,

통계치된 나의 팔로잉과 팔로우, 친구의 숫자놀이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어이없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그들과 진득한 관계를 맻는 경우는 결과적으로 1/1000도 채 안되었으며, 이마저도 실효성은 부족했다.

직설적으로, 필자는 SNS를 통한 관계적 표출과 대중적 노출을 갈망하며 숫자놀음을 할 생각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는 단지

온라인에서 내가 연결된 하나의 숫자라 느낄뿐이라는 점이다.


높은 연결성으로 인한 커리어와 이를 통한 셀럽의 지위가 주는 쾌감이 무엇인지는 공감하겠으나,

구태연한 관계성으로 인한 실효없는 인연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 아닐 뿐더러,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맹목적인 관계 지향성과 그로 인한 대중적 인지도 상승효과가 내게 있어 무엇이 도움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으며,

결과적으로 관계의 1차원적인 목적인 '소통과 교감'을 추구하고 싶은 것이지, 셀러브리티 마인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일전 어느 매거진에서 나온 관련 글 중에서 SNS로 인해 실제 생활속 대인관계가 무뎌지는 현상의 원인으로 몇가지를 내놓았는데,

그중 한가지로 '우울하고 힘든 상황만을 표출한다'라는 점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의 견해와는 다른데,

SNS를 통한 대인 표출과, 실제 삶 속에서의 대인 표출에는 관계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말 친한 사람이라면 실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짜증나도 마주보고 저마다의 상황으로 언질을 줄 것이며,

적어도 필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친구 관계를 재검토해보라 권하고 싶다.

정말로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경우의 사정을 제외하고선, 피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매체상으로는 다르며, 이 대목은 매거진의 의견과 동일하기도 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며, 이를 지속하길 원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힘들었던 것을 

온라인 상에서까지 연결해서 하소연을 듣고자 하진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위로도 정도껏이지,

정도가 지나치면 독이 될 뿐. 승자없는 싸움에 계속 발담구고 있을 의의가 없다.


만약 당신의 친한 친구가 계속해서 힘들고 이를 계속 받아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는 사람이기에 위로를 해주거나, 인내가 폭발하여 상호간의 언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다양한 소모가 발생하게 되겠지만,

매체적 관계는 더욱 단순하게도 대상과의 연결 관계를 버튼 한번 눌러 끊으면 되니, 정리마저 손쉽다.

게다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다툼, 언쟁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많은 이용자들은 오늘도 SNS를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사람의 평판이라는 전통적 오프라인 방식이 온라인으로 확장되어 갈 만큼,

시대의 발전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구조에 있어 다양한 범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관계형성에 주를 이루고, 이를 통한 가치 상승에 주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과의 교류및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고 구축해가는 과정은 대다수의 인생에서 절대적 고민이다.)




#.3

원점에서 보자.

이제 SNS는 문명을 풍족하게 해주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도구가 되었음이 자명하다.


이를 풀어서 살펴보면, 관계를 맻는 관점이 조금 더 쉬워졌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먼저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희망하여 접촉하는 것을 1차적으로 비춰볼때,

접촉에 성공한 이후 두 인간의 관계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당 시간이 할해된다.

상대에 관한 성격, 특징, 취향등의 관점을 알아내야 하고, 이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관계의 성립은 서로가 수락되어져야 하며, 일치되는 결과점이 확인되어야 함으로써 관계는 성립되어진다.

끝이 아니다. 관계가 성립되어지고 이것이 유지되어야 하는 과정들이 필요로 해진다.

결과적으로 시작점부터 일정 수준 도달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험치들이 쌓여가야 한다. 


SNS는 이러한 관계의 관점을 조금 더 단순화 시키고 보편화 시키는 점에서 파급력이 더해진다.


타인과의 접촉이 FACE TO FACE가 아닌 자신의 매체 (컴퓨터, 스마트폰등)를 통해 이루어지고,

이미 상대에 대한 정보도 일정부분 제공이 되고 있기에 (사용자의 포스팅=사진,글,링크,영상등) 이것을 보는 이용자는,

관계를 수립할 대상에 대한 도출과정이 생략된 대신, 상대에 관한 사전 평가가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접근성에 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절약하게 되며, 관계의 성립 결정에 있어서도 비교적 수월해진다.

사용자는 자신의 SNS를 통한 일상의 희노애락을 저마다의 채널에 노출하고, 많은 이들은 이를 확인하며,

때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 접촉을 통한 과정을 매체로 손쉽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문명에게는 더할 나휘없는 혜택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 본질적인 의미로 흘러가고 있을까? 애석하지만 필자의 생각엔 거기까진 아닌듯 싶다.


미국 해버퍼드칼리지 사회심리학 연구진은 SNS에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게시물을 과하게 올릴수록 사람들의 실제 호감도

떨어지며, 인간관계가 좁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비단 이 외에도 다양한 결과를 통한 SNS의 문제점들은 제기되왔다.

여기서 필자가 바라본 점은 모두 자기자신에게 알맞게 포장한 가면을 쓰고 있단 점이며, 이로 인해 자아를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의 공간이라는 점을 들어 독립성을 말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누구나 볼 수도 있다는 곳인 오픈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SNS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면 반대로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측면이 존재하다는 것은 문명의 아이러니함이다.




(보이지 않은 진심을 오늘도 포스팅에 담고 관계를 형성해간다. 그러나 진실은 저 넘어에 있을 뿐..)




#. OUTRO

앞서 언급했듯, 필자는 얼마전부터 다시금 SNS를 시작했다. 보여주기 위한 요식에 불과한 측면도 일정부분 기인하며,

내면의 욕망을 인정함과 동시에 더욱 감추려 드는 자아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측면이 해당된다.

상당히 거추장스럽겠지만 이게 팩트이다. 현실의 내모습을 굳이 숨기려 들 필요가 있을까?

물론 대중들의 조롱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부터 조롱과 핀잔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야 하겠지만,

꿈보다 해몽이 더 큰 척도를 그려 그곳에 현실을 낑겨넣는 행위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지금 내가 바로 나다.

온라인의 연결된 숫자놀이로 치우쳐진 틀이 아닌, 한 인간으로써.



그렇기에 앞으로도 이러한 감정의 저울질은 어느 한켠으로 끊임없이 맴돌며 스스로를 저울질할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중심축을 조절해나가는 것과, 가면놀이에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잡아가는 것이 인생 전체에서 중할 것임은 분명하다.


끝으로 사견에 대한 고뇌의 사유는 지난 뉴스 한가지를 정리하면서 마쳐보려 한다.




2014년 6월. 페이스북에서는 흥미롭지만 상당히 깨림직한 실험 결과물이 들어나서 큰 파문이 일었다. (해당논문내용 - 영문)

페이스북 코어데이터과학팀이 지난 2012년 1월 11일 부터 18일까지 사용자 약 70만명을 대상으로한 데이터를 수집한 논문이

그 발단이었는데, 실험이 진행된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먼저 페이스북에서 대규모 피실험자군을 형성(이용자)하여 뉴스피드를 통한

  긍정적 OR 부정적 게시물을 인위조작하여 반응을 살핀다.


-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게시물을 많이 본 이용자는 긍정적인 게시물이나 댓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부정적인 게시물에 노출 혹은 많이 본 이용자는 부정적인 반응의 피드백 (재방문율 감소)이 많았다.


- 재방문율의 감소는 곧 매출 하락 (이용자 데이터 기반 광고 = 타킷광고)의 원인이 된다. 이로 인한 부분을 대책수립한다.



일명 '감정실험'으로 불리워진 이번 실험은 1차원적으로 판단해보았을때는,

단순히 내부적인 검토 차원에서 그저 그들만의 전략 수립목적으로 '조용히' 처리했더라면? 바램대로 조용히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냥 단순하고 (좋게 말해서다) 쉽게 보자면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그러나 이것이 외부로 들어난 것이 그들에게는 치명적 실수였겠지만, 이보다도 더욱 위험한 사실은

이로 인해 수십만의 사용자들이(크게는 13억 가입자 전체) 단순 실험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는 것.

이것은 도덕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문제 (인간의 감정 행위에 대한 모독)로 직결되는 점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최고책임운영자 (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이번 실험은 페이스북이 다양한 제품을 실험하는 일상적인 업무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해명을 제대로 못해 유감스럽다



이어 10월 2일. 뉴스룸을 통해 최고기술책임자 (CTO)인 마이크쉐로퍼는 아래와 같이 밝혔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 강화된 검토 과정을 거칠 것이며 특히 개인적인 주제인 경우에는 더욱 신경쓸 것이, 수석 연구원들과 엔지니어, 변호사와 회사 개인정보보호 정책팀으로 구성원을 모아 검토 과정을 거칠 것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한 결과를 정리해보면,


"미리 말 못하고 진행해서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계속 진행할 것이다.

 물론 눈치는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더욱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말이다."




단면적이지만, 우리는 SNS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들과 성취하고자 하는 인생의 척도들.

보여지고자 하는 욕망. 이 모든 것들 또한 조종당하게 되는 운명에 처해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명의 풍요로움이 과연 언제까지 스스로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지,

자아 만족을 위한 오늘의 포스팅 하나가 어디까지 나를 위안시킬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묻고 싶다.









(덧붙이며) 페이스북은 지난 2014년 12월 24일. 동영상 섹션 강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을 실시하였다. (테크크런치 보도)

         기능개선을 위한 판올림으로 끝날 이번 실험이 단순 유용한 기능 강화와 매출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강구되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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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조종시간]/사심해우소

(사설) 경쟁과 평가의 정당성에 관하여

chrpcrew ch.)RADIO PEOPLE2015.02.26 18:51






Written By 빨2 (From '뒷담화 PEOPLE')





: 대한민국에서 공존하는 모든 사람들 (상위 몇%정도는 논외로 치자)은 경쟁과 평가에 둘러쌓여있다.
 학창시절에는 대학이라는 경쟁과 평가,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과 환경에 대한 평가
 중,노년에 이르러서는 사회적 위치에 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평가에 관대한 일상이다.
 그런데 묻고싶다. 경쟁과 평가라는 것이 과연 정당하기만 한 것인가?





79%
이 수치는 대한민국 고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를 의미한다. (*1)
쉽게 설명해서 100명중 79명은 대학에 간다는 소리다.
비교대상이 애매한 구석이 있겠지만, 고등학교 진학률 조차 70%를 미치지 못하는 인도(*2)와 비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거센지는 쉽게 짐작 가능할 것이다.

질문하나 던져본다.
과연 이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취업을 하는 것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입사하는 %는 얼마나 될까?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찾지 못했으나 어렵지 않게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은, 50%도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근거없는 근거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래의 점수로 대신한다.



60.3점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의 삶 만족도를 환산한 수치다. 참고로 1위인 국가는 94.2점이며, 네덜란드이다. (*3)
33.9점의 차이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한것은 적은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의 주인공들인 아이들의 삶이 이런 수준이라면, 이런 수준을 밟고 올라온 현재의 우리들의 미래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는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쉬운건 당연한 처사일지 모른다.

2015년 1월 무렵, 안동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예비 소집일날 모인 부모와 아이들이 줄을 서는 일이 있었다.
사는 곳을 기준으로 해당하는 부모와 아이가 서있던 사진이었는데, 논란이 거셌다.
단순하게 바라보기엔 부정하고 싶을 만큼 신분제스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는 아파트와 주소로 인해 내가 남과 비교가 되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과
그것이 무기인양 위세를 떨치는 일부 시민들의 문제가 뒤섞인 코메디가 혀끝을 내두르게 한다.
굳이 줄을 세웠어야 하는건지? 줄을 세워야 하는 것이었다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놓친것이 문제지만,
이런 세심함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시대가 오늘날 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비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가정세태를 조사하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성적으로 인한 대학 진학상담에 이르기까지,
1차적으로 필자가 맞이했던 경쟁들과 평가의 지점이었다.
끝이였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이는 곳 시작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경쟁과 평가는 이어졌다.


남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아버리는 평가자들과 경쟁자로 부축임 당한 동료들.
살기위해, 비교당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남을 밟고 올라서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현실.
비정상적인 틀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당치 못한 것들을 인정하는 모순. 끝없는 죄악의 반복.
울타리 안에서의 ‘갑’과 ‘을’의 위치는 명확해졌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죄없이 염탐해갔다.

상황이 반복될수록 필자는 어렸을 적, 도덕시간에 배워왔던 협동심이라는 대목을 의심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들은 과연 옳은 일인가?’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다.
옳았다면 다른 생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무시했다거나,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를 들어올리진 않았기에.




1/2

주제를 조금 빗겨가보자. 옆나라 일본에서는 연애와 결혼의 가치관이 매우 바뀌어 가는 분위기다.
비슷한 세대의 연애와 결혼이 전혀 다른 현실로 변화되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첫 성 경험율이 50%라는 비율을 조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평균 남자는 30, 여자는 29세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는 길가에 우연히 지나가는 2명의 30살 남자 혹은 29살 여자 중 한명은 경험이 없단 소리다.
성 경험이 저렇다고 연애가 저러기까지 하겠냐는 것에 반문할 자신은 없다.그 이상일 수도 있을거다.
그러나 평균 결혼 연령의 차이가 남녀 13살 정도라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리 높지도 않을 것이 주관적 견해이다.

연애의 문제에서도 경쟁과 평가, 비교는 계속 이어진다.
궁핍해진 경제상황 속에서 연애조차도 이젠 행복한 선택 따위가 아니라 필수 생존전략이 되어버렸다.
감정조차 돈으로 환산해가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이자 굴레로 전락했다.
정작 중요한건 이게 옆나라 이야기라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곧 그리 될 것이라는 전망이기에
불편한 진실에 관한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방이후, 우리가 전후로 먹고살만한 수준까지 이르는데 까지 약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세대 수준의 시간으로 우리나라 전체가 부강해졌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점이고,
국가차원에서 자랑할만한 점이겠지만,
극복과 발전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온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모순들의 병폐를 직시하고 있는 중이다.


‘넌 취업 언제할래?’
‘넌 언애 언제할래?'
‘넌 결혼 언제할래?’
‘넌 아이 언제키울래?’


익숙할만한 경쟁과 평가는 도처에서 여전히 이어진다.
꿈이라는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인생이 값질 이유는 충분하다.
저 질문들이 인생을 대변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작금의 현실이 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일정부분의 경쟁과 평가는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모든 죄악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모든것에서, 심지어 개인들의 영혼까지도 비교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 것은 무언가의 부조리다.
뜯어 고치는 것이 불가능 할지는 몰라도 생각한번 다르게 해보자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일까?




20년전에 발표된 노래 가사 한줄에서 의미하는 것이 오늘까지 통용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할 뿐이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젋은날을 헤메일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 - 교실이데아








*1 : 2010년 발표 기준
*2 : 인도의 대학진학률은 평균 25% 수준이라고 한다.
*3 : 2014년 OECD 회원국 기준, 대한민국은 회원국 중 최하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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